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8.15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을 희망으로 풀어낸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 [토지]의 4부와 5부가 집필되고 완간된 곳으로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삶과 문학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공원내에는 선생님이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의 이곳 단구동에 정착해 살았던 옛집과 정원, 집필실을 원형대고 보존하였고, 주변은 [토지]의 배경을 세 가지 테마로 나눠(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로 꾸미었습니다.
아울러 공원 내 북까페 1층에서는 박경리 선생님 관련 서적을 볼 수 있으며 2층은 지역의 최희웅 선생님이 평생 동안 수집해 기증한 일제강점기 교과 자료를 통해 토지의 주요시대적 배경을 볼 수 있는 특별 전시장입니다.
원주역사박물관은 평원, 북원경, 강원감영으로 이어지는 유서 깊은 원주의 역사와 전통문화유산을 수집·보존하고 종합적으로 연구·전시하여 오늘의 원주가 있기까지 어떻게 변화 발전하여 왔는가를 보여주는 박물관입니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원주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상설전시와 더불어 우리 전통문화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전시를 통한 특별전 개최 및 전통문화 공예교실 등 박물관 교육프로그램, 다채로운 전통문화 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출렁다리의 위치는 소금산(343m)이 뒤를 바치고 섬강과 삼산천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그 아름다움을 '한수를 돌아드니 섬강이 어디메뇨, 치악이 여기로다'라고 노래했고,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은 전국 명소를 돌다 이곳 경치에 반해 상당기간 머물며 유유자적 했다고 전해집니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등산을 위한 산악보도교 역활보다는 철저하게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어 놀이기구보다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는 입소문으로 원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원주천(原州川)과 삼산천(三山川)이 합류하는 간현 협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백장이 펼쳐져 있고, 수심이 얕은 맑은 강물 때문에 치악산 국립공원과 함께 국민관광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금산 출렁다리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던 곳입니다.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내아), 포정루(정문), 4대문, 객사 및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 버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습니다.. 2000년 발굴조사 결과 중삼문터, 내삼문터, 공방고, 책방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터와 내삼문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습니다..
강원감영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강원감영 이전의 원주목 관아의 건물터 등이 그 아래층에 그대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아 건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입니다.